다시 복기해 보는 노키아 몰락의 이유, 시장과의 정면 승부를 피한 혹독한 댓가

Updated on 2017-09-15 by

아이폰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폰 점유율 그래프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자료를 정리하다보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끝을 모르고 자료를 찾게 됩니다. 아이폰의 점유율에서 시작해서 어느덧 노키아의 점유율 자료까지 정리하게 되었습니디. 그냥 참고로만 보려다가 노키아에 대해서 참깐 정리하고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노키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엄청난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몰락해서 그 몰락의 교훈에 대해 언론을 통해 접해본 정도.. 특히 한국에서는 노키아가 영업을 하지않았던것으로 기억되므로(노키아폰이 한국에서 팔린다는 이야기를 못들어봤습니다) 그 기억의 정도가 더 희미하겠지요.

노키아의 성공 신화로 한때는 많은 경영학교과서에서 케이스스터디로 거론되었지만 이제는 기업 흥망의 사례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참 허망하긴 합니다. 2013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로 인수된다고 선언되고 2014년 3월 최종 인수되면서 사라진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에 대해서 기존의 자료를 토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노키아 휴대폰 사업에 대한 간략한 정리

노키아(Nokia)는 1865년에 핀란드의 노키아라는 작은 도시에서 제재소로 출발한 기업입니다.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케이블, 타이어, 전자, 통신제조업 등 폭넓은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초 핀란드 최초로 GSM 방식의 휴대전화 산업에 진입합니다.
1992년에는 시티뱅크 출신의 요르마 욜릴라(Jorma Ollila)가 CEO로 취임하며 휴대전화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기존 제지, 고무, 케이블 등의 사업을 정리하고 휴대전화 사업에만 집중합니다.

당시 유럽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대륙이었고 유럽의 다양한 국가의 존재는 일찍부터 표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마다 독자적인 휴대전화 규격을 개발하면 타국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유럽 우편전기통신회의(CEPT)는 1982년부터 디지털통신 공통규격 마련을 담당할 실무그룹 GSM(Group Special Mobile)을 발족했고 그 결실로 1991년 4월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규격이 도입됐습니다. 이후 GSM은 유럽, 미국등으로 퍼져나갔고 세계적 규격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참고로 한국 등 몇몇 나라는 CDMA라는 별도의 규격을 채택합니다.

주요 휴대전화 생산지인 유럽주도로 GSM이라는 규격이 정해지자 노키아는 GSM 규격 덕분에 유럽 이외의 제조업체에 대해 경쟁 우위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잇점을 노키아의 기술적 우위를 토대하에 극대화하면서 1998년 노키아는 미국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제1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등극합니다.

이후 노키아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합니다. 2007년 말에는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매출은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약 25%에 해당할 정도로 커졌고 그러다보니 노키아의 시가총액은 핀란드 전체 상장사 시가총액의 60%가 넘을 정도로 엄청난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2007년은 노키아에게 최고 영광의 순간이자 몰락이 시작되는 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노키아(Nokia) 본사 resize.jpg
▲ 노키아가 1997년부터 사용하던 노키아 본사 건물, 호수옆에 3동을 나란히 지은 건물로 야경이 아름답다. 2012년 대지와 건물을 2.2억불에 매각하고 다시 여기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로 사용중이다.

2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을 경시했을까요? No!!

노키아는 1998년 모토롤라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2011년까지 14년간 세계 정상을 지킵니다.
현재 2016년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노카아는 그 존재를 알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코닥의 사례처럼 노키아도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급속히 넘어가는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일까요?

사실 노키아는 누구보다 먼저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많이 오해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사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한 회사입니다.
노카아는 1996년 노키아 최초의 스마트폰인 ‘Nokia 9000’을 출시했고 이어서 지속적으로 스마트폰 라인업을 눌려왔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이미 무선 인터넷과 터치 스크린이 탑재된 태블릿을 개발합니다. 애플이 아이패드가 2010년 처음 출시되었으니 애플보다도 10년이상 빠른셈입니다.
스마트폰 측면애서 경쟁사들보다 훨씬 빨리 시장에 진입해서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높은 판매고와 이에 수반하는 높은 시장점유율을 획들 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엔 노키아의 판매대수가 2900만대에 달했습니다. 스마트폰을 정의하는 시장조사회사마다 조금식 다르겠지만 노키아는 당시 50%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었고 2010년이되어서야 연간 아이폰 판매대수가 3900만대를 넘어섰으므로 노키아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키아 9000 (Nokia9000) 광고.jpeg

▲ 노키아가 1996년 출시한 Nokia 9000 communicator, 지도 기능등등으로 여행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노키아는 스마트폰을 선도했지만 시장을 리딩하지는 못했습니다.

노키아가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시기부터 자료를 구할 수 없어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오랜된 시기부터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2005년 4분기부터 스마트폰(피처폰을 제외한 자료로 일반적으로 피처폰+스마트폰을 mobile phone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점유율 그래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프에서 보여주는 것은 초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시장 장악이 아이폰이 나오고 다른 경쟁사들의 거친 도전에 따라 점차 힘을 잃고 점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같이 보아야할 회사가 RIM 이란 회사 입니다. 블랙베리로 유명한 이 회사는 이메일 보안으로 유명해 한때 오바마폰으로 불렸고 북미에서 높은 점유율을 구사한 브랜드인데 마찬가지로 2010년을 기해 점유율이 하락하고 이제는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를 보면 자연스레 왜? 왜?라는 질문이 강렬하게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을까요?

스마트폰 점유율 추이(2006~2016) 추가.jpg

3 노키아 몰락의 이유를 찾아보자

그러면 노키아 몰락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래처럼 4가지의 전략적 실수가 노키아를 몰락으로 이끈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첫째, 노키아가 장악하고 있었던 피처폰 시장에서도 트렌드를 경시했습니다.
둘째, 뜸금없는 저가 전략은 수익성에 치명타를 주었습니다.
셋째, 아이폰의 위협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넷째, 경쟁력있는 운영체제를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첫째, 피처폰 시장에서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아 낙오되었습니다.

휴대폰 시장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는 있었지만 워낙 거대한 시장이기에 피쳐폰 시장은 상당히 오랬동안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실질적으로 피처폰을 앞선 것은 2013년 2분기이니 오랬동안 피쳐폰은 중요한 시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 피처폰에서도 스마트폰에서도 시장을 리딩하지 못했습니다. 피쳐폰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토롤라나 삼성등이 새로론 디자인과 타입을 혁신하는 동안 노키아는 전통적인 디자인, 즉 캔디바라 불리는 피쳐폰에 집중합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타입에 열광하고 구매하는데 노키아는 이를 경시한 것입니다.

2000년대 휴대폰시장은 플립폰(Flip phone)이 대세가 됩니다. 플립폰(Flip phone)은 지금도 우리에게 친숙한 뚜껑 여닫이식 휴대폰으로 폴더폰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 플립폰(Flip phone)은 모토로라가 레이저를 출시하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2004년 ‘레이저’로 알려진 모토로라 폴더폰 V3는 출시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얇은 두께에 알루미늄과 니켈 키패드를 쓴 세련된 디자인으로 모토로라 레이져를 패션 아이콘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4년동안 2억가 팔리는 대히트를 치게됩니다.

이에 대응하는 노키아의 전략은 플립폰(Flip phone)이전에 성공을 거두었던 캔디바라 불리는 피쳐폰 라인업을 더욱 늘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 결과 시장을 리딩하지못하고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며 더욱 어려운 길로 가게된 것입니다.

모토로라 V3 레이저와 노키아 캔디바폰.jpg

둘째, 프리미엄시장에서 낙오하자 저가 시장과 피처폰을 더 강화합니다.

휴태폰 산업이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 노키아는 뜨악하는 결정을 연속으로 내립니다.

그것중 하나는 2004년부터 시작한 저가 전략입니다. 노키아는 아마도 자기들이 가진 강점을 충분히 살리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노키아의 전매 특허같아던 플랫폼 전략을 활용해 극한의 cost 경쟁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플랫폼 전략이란 휴대전화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일부 부품과 디자인만 달리해서 다양한 모델을 내놓는 방식을 말하는데 노키아의 이러한 플랫폼 전략의 산업적 탁월함을 바탕으로 신흥국 시장을 겨냥한 저가 단말기의 제조를 위해 대대적인 생산성 향상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라인업으로 신흥 소비자를 공략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가 휴대폰 집중 전략은 노키아에게 엄청난 적자를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나름 강점이 있다고 진입한 저가 신흥 시장이지만 이 시장에는 향후 화웨이나 ZTE와 같은 정말 대책이 서지 않는 중국 제조업체와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신흥국에서 핸드폰 사용하기 resize.jpg
▲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노키아가 주력하려고 했던 신흥국에서 휴대폰 사용 사진을 찾다가 너무 보기다 좋아서 구글에서 가져와 봤습니다.

또 하나는 2006년 CFO였던 올리페카 칼라스부오(Olli-Pekka Kallasvuo)가 CEO로 취임하면서 당시 수익이 더 좋았던 피처폰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고 스마트폰 사업부를 피처폰 사업 부문으로 통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결과로 매출 등 재무성과가 훨씬 더 좋았던 피처폰 사업부의 목소리에 스마트폰 사업부가 눌려 스마트폰 사업이 발전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뒤에서 이야기하는 심비안(Symbian)을 근본적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던 이유가 이러한 조직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모든 경영의 제1원칙으로 '비용관리'를 내세워 노키아에서 관료주의가 득세하고 혁신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혁신이 사라지자 재미가 없어진 직원들의 이탈이 속출했고, 비용절감으로 서비스등 품질이 나빠져 소비자들도 노키아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서 혁신을 통한 정면 승부를 하지않고 회피하려는 전략은 근본적으로 노키아를 병들게하고 경쟁력의 싹을 근본부터 잘라버린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아이폰의 위협에 충분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피처폰 시장에서 트렌드를 경시해 기회를 놓쳤다면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서도 새로운 혁신 트렌드를 경시하였습니다.

207년 애플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아이폰이 가져온 여러가지 혁신은 휴대폰 시장을 강타했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소비자 기대를 대대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수마트폰을 소비자들이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또한 그 어는 휴대폰보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대로 화면속에 아이콘을 넣고 터치 스크린을 채용해서 쉽게 구분할 수 있고 쉽게 작동할 수 있어서 어린 아이라할지라도 금방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쉽고 직관적인 UI를 가졌습니다.

아이폰 최초 구입자_20070615_Apple_iPhone_2007_Reuters.jpg

▲ 아이폰 최초 구입자중의 한명이 환호를 지르며 뉴욕 5번가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떠나고 있다. 이들과 같은 애플에 대한 절대적 로열티를 가진 소비자가 있는 애플을 공략하려면 더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One of the first iPhone buyers leaves the Apple store on 5th Ave. in New York on June 29, 2007. (Reuters)

또한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은 소비자들을 iOS 세계에서 계속 머물게 만드는 생태계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전 윈도우즈 운영체계와 달리 애플 앱스토에서는 어느정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 수많은 개발자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앱스토어 아이폰을 위한 앱개발에 열을 올렷습니다. 그 결과 아이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많은 앱들이 나타났고 이는 아이폰 생태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더우기 위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애플은 기존 맥킨토시 및 아이포드를 통해서 수많은 애플 매니아를 만들어왔고 이들은 애플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들이었습니다. 브랜드 로열티 측면에서 노키아와 견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노키아는 이러한 위협에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아이폰의 출시를 보고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은 아이폰 생산 원가가 너무 높아 각겨이 비쌀 수밖에 없으며, 2G 네트워크를 기반이라 속도가 느리며 터치스크린이 충격에 약해 튼튼함을 요구하는 휴대폰과는 맞지않는다는 단점 중심의 보고서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러한 보고서의 영향인지도 모르지만, 아이폰이 출시 후 노키아 최고경영자(CEO)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는 “조크(joke) 같은 제품이다. 시장에서 먹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한 것이 표준이다”라고 호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의 말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앞서 노키아 엔지니어가 보고한대로 처음 아이폰이 공개되었을 시 아이폰의 가격은 매우 비쌌습니다. 2년 약정으로 500$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도 너무 비싸다고 비웃었습니다.

"$500 full-subsidized with a plan!"
"I said that is the most expensive phone in the world and it doesn't appeal to business customers because it doesn't have a keyboard which makes it not a very good email machine."

그러나 애플은 미국 2위의 이통사 AT&T에게만 제공한다는 협상을 통해서 가격을 2년 약정기준 500달러에서 200달러로 낮추면서 아이폰은 시장의 주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원가는 비쌌지만 핸드폰 약정 및 통신사와 제휴라는 비지니스모델을 통해 유일한 약점이었던 가격을 상쇄버렸고 이 때부터 아이폰은 모든 휴대폰업체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iOS나 안드로이드와 경쟁할 운영체제를 선택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습니다.

애플 아이폰의 강력한 공습이 있자마자 구글의 안드로이드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다고 하는 것처럼..애플 iOS는 애플만 사용하는 폐쇄적인 운영체제였는데 이 시점에 구글은 정반대의 컨셉을 들고 시장에 나온 것입니다. 아이폰에 대항할 만한 앞선 기술의 OS로 모든 업체에 공개했고 메이커에게 어느 정도 커스터마이징해서 차별화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습니다.

모토로라나 HTC나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려 즉각 애플에 반격에 나섰습니다. 삼성은 다소 늦었지만 안드로이드를 받아드려 빠르게 경쟁사를 따라잡으로 스마트폰 1위에 오릅니다.

당시 노키아에게는 여러가지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모토로라처럼 안드로이드를 도입하는 방안이 하나였고 또 하나는 자체 가지고 있던 심비안(Symbian)을 발전시키는 것 이었습니다.
노키아는 이 심비안(Symbian)을 발전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는데 이 또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노키아 내부에 고유 운영체제인 심비안 (Symbian) 자체를 개선하고 활용하려는 팀과 미고 (MeeGo)라는 심비안 (Symbian) 에서 발전시킨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려는 팀으로 나뉘면서 제대로 된 개발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당시 돈을 벌고 있던 피처폰사업부의 압력등으로 피처폰과 스마트폰 부분을 통합하게 되고 스마트 개발 부분은 힘을 잃어 원하는 개발을 제때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이해 노키아가 절실하게 필요한 OS로서 심비안(Symbian)을 혁신할 수가 없었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2011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CEO 엘롭은 운영체제 심비안 (Symbian)을 ‘시련의 플랫폼’으로 규정해 포기하고 MS의 윈도폰을 채택합니다. 아마 경쟁을 고려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발표시기가 너무 좋지않아 노키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전술적인 실수가 됩니다. 즉 윈도폰을 선택했어도 실질적인 윈도폰이 나오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고 그 동안은 소비자는 사라질 운영체계를 가진 노키아폰을 철저히 외면해버려 노키아 판매는 급락하게 됩니다. 일종의 '오스본 효과(Osborne effect)'라 할수 있습니다..(※ 1983년 오스본 컴퓨터 회사의 창업주인 아담 오스본은 계획 중인 차세대 휴대용 컴퓨터를 시장에 발표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앞으로 나올 신형 모델을 구입하려고 구형 모델의 구매를 미뤘다. 그러자 회사에 현금이 돌지 못해 부도가 났고 이를 '오스본 효과'라고 한다.)"

그리고 MS의 윈도폰이 경쟁력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감히 yes라고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후 출시된 MS의 윈도폰 중에서 성공한 폰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노키아가 심비안(Symbian) 운영체제를 제대로 개선했거나 안드로이드 진영에 합류했다면 지금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심비안(Symbian) anna.jpg

마침글 모든걸을 다 버린 노키아, No.1 통신장비 업체로 돌아오다

노키아 휴대폰사업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전략적 실수를 연속으로 합니다.

지금에야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많은 전문가등의 분석이 있었으니 그 당시 노키아 경영진의 전략적, 전술적 실수가 빤히 보이겠지만 제한적 정보하에서 경영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트렌드를 알았고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승부를 피하고 주저주저하면서 혁신을 회피한 댓가는 혹독한 것 같습니다.

결국 노키아는 핵심사업부인 휴대전화 사업을 과감하게 버리고 강력한 구조조정과 내부혁신을 하는 내부와의 정면 승부를 하면서 비지니스를 통신장비 부분으로 전환하고 유통도 B2C에서 B2B로 바꾸면서 부활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에는 프랑스 통신 장비업체인 알키텔-루슨트를 인수하면서 세계 1위의 통신장비업체로 부상하였고 노키아의 순이익도 급급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노키아가 휴대폰 시절 전사의 운명을 건 과감한 정면승부를 했으면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정면승부를 내부와 겨루면서 부활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Nokia site image  resize.jpg
▲ 노키아 홈페이지의 이미지 중 하나, 노키아 관련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하나 담을려고 찾았는데 마땅한게 없어서 이 이미지를 선택 함. 분위기가 있고 왠지 노키아와 맞을 듯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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