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원 화성의 창룡문부터 팔달문까지 살펴보면서 수원화성 탐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석을 담기위해 시작했다가 수원화성에 대한 글을 적다보니 장장 4일에 걸쳐서 수원 화성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4일동안 수원화성을 돌아보면서 미처 몰랐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수원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고장이고 더 진화하려고 무지 노력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가진 생각은 길도 좁고 항상 막히는 전형적인 옛날 도시라는 이미지였는데, 점차 고전의 아름다움을 계승하고 현대를 발전시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창룡문에서 팔달문으로 가는 길은 완전하게 이어지지는 못해 중간중간 끊겨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에 공사하는 구간도 있었구요. 이는 세월의 흐름과 현대 도시의 발전 사이 희생된 과거 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정도로 아주 적은 부분만 유실되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원 화성에 대한 간단 소개
모든 분들이 처음부터 이 수원화성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아니므로 전퍈에서 계속 언급된 수원화성에 대한 소개를 하고창룡문에서 팔달문사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적 3호인 수원화성은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화산으로 옮긴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1794년 1월에 착공해 2년9개월 만인 179 7년 9월에 완공한 성이다.
둘레가 약 5.7km. 성곽의 높이가 4∼6m로,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창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가졌다.
또한, 용재를 규격화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해 건축사상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후 200여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크게 파손되었다. 그러나 축조 상황을 기록해놓은 「화성성역의궤」에 의거, 1975년부터 보수·복원하여 1975년 12월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원문화재단의 수원화성 소개 인용
▲ 지난 글에도 인용했던 수원화성지도입니다. 수원화성 전체를 이해하기위해서는 필요하기에 여기에도 올렸습니다.
창룡문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길
오늘 살펴 볼 창룡문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구간에 대해 이 부분만 클로즈업한 지도를 통해서 먼저 살짝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수원화성지도 중에서 창룡문에서 팔달문에 이르는 성괄길이 나오는 지도 부분을 크로즈업했습니다.
창룡문-동일포루-동일치-동포루-동이치-봉돈-동이포로-동삼치-동남각루-팔달문의 순으로 살펴봐야겠습니다.
이길은 약간 경사진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고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이라 큰 굴곡없이 치성과 포루가 반복되어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봉수대시설이 하나 있는 정도입니다.
▲ 구름이 좋은 날 창룡문에서 팔달문 방향의 성곽길을 멀리서 담아보았습니다.
첫번째 방어시설, 동일포루(東一舖樓) |
창룡문을 지나 맨 처음 나오는 방어시설이동일포루(東一舖樓)입니다. 마치 정자처럼 보입니다.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초소와 같은 역활을 합니다.
동일포루(東一舖樓)는 1796년 (정조 20년) 7월 10일에 준공되었다. 포루는 정면 1칸, 측면 3칸의 중층으로 3량의 우진각지붕을 갖추었다. 하층 주위의 3면은 여장으로 둘려져 있고, 원근총안(遠近銃眼)을 내었다. 상층 동측 2칸은 마루를 갈고 1칸은 통 2층으로 하여 목조 사다리를 설치하였다.[위키백과 인용]
▲ 창룡문에서 팔달문 방향..
거의 일직선에 가까워 조금은 단조로울 수 있을 것 같네요
▲ 수원화성 동일포루 근처에서 바라본 창룡문
▲ 이번 타이틀의 주인공, 수원화성 동일포루가 드디어 나타났네요
▲ 동일치근방에서 담아본 사진, 동일포루위로 핼기가 지나갑니다.
▲ 수원화성 동일포루안의 단청
특이하지는 않는데 함 담아보았습니다.
▲ 수원화성 동일포루에서 바라본 창룡문 방향 성곽밖의 풍경을 담아보았습니다.
▲ 수원화성 동일포루에서 동일치방향 풍경
▲ 석양빛을 받은 수원화성길
▲ 동일포루에서 동일치로 가는 길
▲ 표지석 창룡위중부
이 표식은 당직을 서는 담당들의 경계를 표시해준다고 합니다.
동일치 |
치는 철(凸)자 모양으로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물 중 하나이다. 치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화성에는 남치(南稚), 용도일·이치, 서일치(西一稚), 서이치(西二稚), 서삼치(西三稚), 동일치(東一稚), 동이치(東二稚), 동삼치(東三稚) 등이 있다.[위치백과 인용]
▲ 동일치 전면 이미지
▲ 수원화성 동이치에서 바라본 동일포루
▲ 수원화성 동일치에서 바라 본 동포루
동포루(東砲樓) |
동포루(東砲樓)는 봉돈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정조 20년) 7월 16일에 준공되었다. 포루는 3중층으로, 정면 1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하층과 중층의 벽은 돌출부 3면을 전축했고, 성내측면은 석축으로 했으며, 외부의 포혈과 총안을 두었다. 상층 여장의 타구(垛口) 및 전안(箭眼)은 서포루와 비슷하다.[위치백과 인용]
▲ 동포루(東砲樓) 전면 이미지
▲ 동포루(東砲樓) 입구, 굳게 닫혀있습니다.
▲ 동포루(東砲樓) 입구 태극문양을 확대해봅니다.
▲ 동포루(東砲樓) 단청
동이치 |
치는 철(凸)자 모양으로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물 중 하나이다. 치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화성에는 남치(南稚), 용도일·이치, 서일치(西一稚), 서이치(西二稚), 서삼치(西三稚), 동일치(東一稚), 동이치(東二稚), 동삼치(東三稚) 등이 있다.[위치백과 인용]
▲ 동이치 멋진 석양의 구름을 기대했는데-
▲ 동이치
▲ 동이치 총포구멍사이로 보이는 동포루
▲ 동이치 총포구멍 사이로 보이는 봉돈
▲ 깃발 소리없는 아우성-
봉돈(烽墩) |
봉돈(烽墩)은 불을 비추어 행궁을 수비하고 성을 수비하며 주위를 정찰하여 사태를 알리는 군사 및 교통상의 신호 시설물이다. 봉돈은 화성 동문의 서남쪽에 있으며, 5개의 연기구멍을 갖추어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되었다. 1796년 (정조 20년) 6월 17일에 완공되었다.
성벽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키고 하층은 석축으로 쌓고, 위는 전축으로 성벽보다 높이 쌓아 위쪽에 여장을 두었다. 내부는 3층의 계단식으로 만들어서 가장 높은 곳에 5개의 횃불 구멍인 화두(火竇)를 설치하였다. 여장 3면에는 포혈 18개를, 그 아래 3면 벽성(甓城)에는 총안 18개와 누혈(漏穴) 1개를 뚫었다.
밤에는 불,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남쪽의 첫째 것에만 사용을 했다. 나머지 4개는 긴급한 일이 없으면 횃불을 들거나 연기나게 하지 않았다.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그리고 적과 접전시에는 5개의 봉화를 올렸다. [위키백과 인용]
▲ 옆에서 본 봉돈
▲ 정면에서 본 봉돈
▲ 봉돈 입구
▲ 봉돈 입구의 자물쇠
동이포루(東二舖樓) |
다음 나오는 방어시설이 동이포루(東二舖樓)입니다. 이도 마치 정자처럼 보입니다.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위에 지은 목조건물로 초소와 같은 역활을 합니다.
동이포루(東二舖樓)는 봉돈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층누각 밑에는 총안을 뚫어 놓았다. 1796년 (정조 20년) 7월 3일에 준공되었다. 포루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중층누각이고 처마는 홑처마에 납도리를 썼으며, 지붕틀은 5량의 우진각지붕이다. 하층의 총안 등은 동북포루와 동일하다.[위키백과 인용]
▲ 옆에서 본 동이포루
▲ 앞에서 본 동이포루
▲ 동이포루에서 바로본 봉돈
▲ 동이포루에서 바로본 수원제일교회
교회건물이 상당히 멀리서도 눈에 뜨입니다.
첫번째 방어시설, 동일포루(東一舖樓) |
치는 철(凸)자 모양으로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물 중 하나이다. 치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화성에는 남치(南稚), 용도일·이치, 서일치(西一稚), 서이치(西二稚), 서삼치(西三稚), 동일치(東一稚), 동이치(東二稚), 동삼치(東三稚) 등이 있다.[위치백과 인용]
▲ 동삼치(東三稚)
▲ 동삼치(東三稚) 수원제일교롸가 배경이 되는
▲ 수원화성 성곽길
▲ 동삼치에서 바라본 동이포루
▲ 동삼치에서 바라본 동이포루
보수공사중인 남수문위의 동남각루(東南角樓) |
동남각루(東南角樓)는 남수문 바로 옆에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벽이 꺾인 모퉁이에 있어서 주위를 관찰하기가 쉽다. 1796년 (정조 20년) 7월 25일에 준공되었다.
▲ 보수공중인 동남각루(東南角樓)
▲ 동남각루에서 내려가는 길 멀리 필달문이 보입니다.
남수문 및 팔달문시장 |
팔달문야경 |
팔달문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한 수원 성곽의 남문이다.
수원성곽은 중국의 성과 비슷한 모습이 많지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건축 기술로 쌓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팔달문의 이름은 수원 성곽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온 것이다. 팔달문의 문루는 앞면이 5칸, 옆면이 2칸으로 구성된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에서 볼 때 사다리꼴로 보이는 우진각 지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지붕의 처마를 지탱하기 위해 장식한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넣은 다포 양식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문의 바깥쪽에는 성문을 보호하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반원 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과거에는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성벽은 헐리고 성문만 남아있다. 수원성의 여러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한 건축물로, 조선 후기의 발달된 성문 형태를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경기관광포털 인용]
다음편에서는 행궁이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원 근방 가볼만한 곳에 대한 글…
[수원 나들이]석양이지는 성곽길이 아름다운 수원화성 – 창룡문과 방화수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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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나들이]석양의 성곽길이 아름다운 수원화성 둘째날 – 장안문을 중심으로
[수원 나들이]석양의 성곽길이 아름다운 수원화성 세째날 – 서장대를 오르다
[수원 나들이]석양의 성곽길이 아름다운 수원화성 넷째날 – 팔달문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