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시대다.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그 애플 말이다.
한국에선 어려울 것이라던 애플의 아이폰(iPhone)이 국내에서도 선풍을 불러일으키자 휴대전화시장의 세계적인 강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기껏 노키아를 따라잡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왔건만 엉뚱하게 애플에 안방에서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꼴이다.
지난주 전 세계 언론들은 온통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와 그가 발표한 신개념 모바일 기기인 아이패드(iPad)를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른바 태블릿 PC인 아이패드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PC(또는 이보다 간소한 넷북)의 중간쯤 되는 모바일 기기다. 기존의 전자책(e북)에 통신기능과 PC 기능을 합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잡스는 “아이패드가 스마트폰과 랩톱(노트북) PC 사이의 빈자리를 채울 제품”이라고 호언했다. 그동안 태블릿 PC 시장은 사실상 죽은 시장이나 다름없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선 휴대전화와 노트북 사이의 공간이 ‘버뮤다 삼각지’로 불린다. 이 시장에 출시된 제품마다 하나같이 소비자들의 레이더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태블릿 PC의 도래를 예고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고, 잡스도 ‘뉴튼’이란 실험적 제품을 내놨으나 스스로 접었다. 그만큼 소비자층을 특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시장이란 얘기다.
그런데 아이패드에 대해선 반응이 달랐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다. 바로 스티브 잡스가 손댔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쯤 되면 가위 잡스 신드롬이라고도 할 만하다. 손대는 물건마다 황금으로 변한다는 미다스의 손이 따로 없다. 아이패드 이전에 잡스가 이룬 놀라운 성과를 보면 그런 기대를 할 법도 하다. 사실 애플의 중흥을 이끈 MP3플레이어 아이팟(iPod)이나 아이폰이 애플의 독보적인 신기술에 의해 탄생한 제품은 아니다. 이미 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MP3플레이어가 나와 있었고, 스마트폰의 기술도 여러 회사가 개발한 터였다. 그런데 잡스가 이들 시장에 뛰어들고부터 시장이 살아나고 대박이 터졌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란 연상을 하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제 IT산업에서 신화가 돼버렸다.
잡스가 애플 CEO로 복귀한 이후 거둔 놀라운 성공신화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제품에 혁신적인 디자인과 감성적인 코드를 입혀 기존 제품과 차별화했다는 분석은 신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기기와 이를 이용해 구현하는 콘텐트를 독점적으로 연결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한 것이 핵심이다. 아이팟에는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는 온라인 장터인 ‘아이튠스’를 열었고, 아이폰에는 온갖 응용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온라인 장터인 ‘앱스토어’를 열었다. 애플의 모바일 제품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트를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애플만의 콘텐트 원천을 만든 것이다. 그런 콘텐트를 이용하려면 당연히 애플 제품을 사야 하는 독점적 시장구조를 형성한 셈이다.
아이패드에서도 잡스는 똑같은 전략을 구사한다.
아이튠스의 음악과 영화파일 및 앱스토어의 응용프로그램을 아이패드에서도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신문과 책·게임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독점적 채널을 구축하고 있다. 이미 뉴욕 타임스 같은 신문과 펭권 등 출판사, 다수의 게임업체와 콘텐트 공급계약을 맺었거나 계약을 추진 중이다. 이런 전략이 성공한다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넷북이나 PMP(휴대용 멀티미디어플레이어), e북, 게임기, 내비게이션 업체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아이패드 하나로 이 모든 기능을 다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이패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그동안 태블릿 PC의 한계였던 어정쩡한 크기가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스마트폰에 비해 간편성과 연결성은 떨어지고, 넷북만큼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크기만 커진 아이폰(또는 아이팟)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카메라 기능이 없고, 배터리를 바꿀 수 없다는 것 또한 약점으로 지적된다. 전문화된 기기들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기능을 한데 모은 것만으로는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주장도 많다. 이런 평가 때문인지 아이패드 발표 전 4일간 수직 상승했던 애플의 주가는 발표 이후 4% 이상 떨어졌다. 잡스가 성공신화를 이어갈지는 3월 아이패드가 출시된 이후 소비자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잡스는 아이패드를 발표하면서 “애플은 노키아와 삼성전자를 제친 세계 1위의 모바일 기기업체”라고 선언했다. 스마트폰 시장이나 시가총액만 보면 이 말이 맞다. 그러나 전체 휴대전화 시장이나 IT시장에서 보면 애플이 1위라고 하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애플과는 혈통이 다른 기업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몇 가지 단출한 대박상품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면, 삼성전자는 가전과 IT 제품을 망라한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애플이 간판 제품 하나라도 실패하면 전체가 큰 타격을 받는 구조인 반면 삼성은 유연한 대처가 가능한 구조다.
일각에선 아이폰 열풍을 들어 국내 IT 업체의 위기를 얘기하지만 애플 방식을 국내 업체가 모두 따라 하기도 어렵고, 또 그것이 최선의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 국내 기업이 애플의 혁신 노력을 본받는 것은 좋지만 특정 제품에 올인 하거나 콘텐트를 독점하는 애플식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수한 제조역량이 강점인 삼성전자는 애플을 따라 할 게 아니라 삼성전자만의 성공신화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소니가 콘텐트를 강화한다며 영화사를 인수하면서부터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좋은 교훈이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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