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알함브라궁 전시회 앞둔 ‘미스터 마쓰’ 배병우 사진작가

Updated on 2009-07-13 by

오늘 문화일보에 사진작가 배병우씨에 대한 기사가 났길래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그의 집념이 절절히 묻어나는 사진과 그의 강의 내용, 인터뷰 기사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우물을 파라… 그의 강의 내용에 제발 분식집은 하지말라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 저것 값싸게 팔면서 부가가치없는 그런일은 하지말라는 …
소나무만 찍는데도 인생이 부족하다고 ..

 

배병우-소나무01.jpg

배병우-소나무02.jpg

 아래 사진은 마치 번개치듯한 느낌을 주는 사진이다..
소나무 숲에서 머리 위 하늘을 올려다 보며 찍은 사진인데, 마치 번개처럼 섬광이 수십 갈래로 뻗어져 나가고 있다

배병우-소나무_번개치듯한사진.jpg

 

 

“평생 자연과 한국적 화두 고민하다 소나무 만났죠” 

알함브라궁 전시회 앞둔 ‘미스터 마쓰’ 배병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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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 영국 팝가수 엘턴 존, 벨기에의 필립 왕세자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한국의 사진작가 배병우(59·사진)씨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6월 정상회담차 워싱턴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배병우씨의 사진집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선물로 받았다.
엘턴 존은 2005년 그의 유명한 소나무 사진을 보더니 “바로 나를 위한 작품”이라고 격찬하며 1만5000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3136만원)를 내고 구매했다. 당시까지 한국 사진 작품 판매가로는 최고기록이었다.
필립 왕세자는 올해초 “당신의 소나무 사진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다”며 배병우씨를 수도 브뤼셀의 왕궁으로 직접 초대하기도 했다.

배병우씨의 사진작품에 반한 이들은 세 사람말고도 일일이 손꼽기에 벅찰 지경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의 작업실, 스페인의 세계적인 의류업체 망고, 프랑스 시슬리 화장품 본사 건물에도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런가하면 부산 해운대의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로비에 걸려있는 그의 거대한 소나무 사진 앞에서는 넋 놓고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왜 배병우인가, 아니 왜 그의 소나무 사진인가.

지난 8일 경기 파주 헤이리에 있는 배병우씨의 작업실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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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는 16일부터 스페인 그라나다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알함브라궁 내 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영혼의 정원(The Soul Garden)-알함브라와 창덕궁’ 전시를 앞두고 출국 준비 중이었다.
지난 2년여동안 수십차례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가 촬영한 사진들을 드디어 올 여름 그곳을 방문한 전세계인들 앞에 내놓게 된 것이다. 더구나 창덕궁과 그 후원(後園)을 알함브라궁의 후원과 나란히 선보인다니. 부쩍 더 호기심이 생겼다.

질문을 꺼내놓으려는 순간, 배병우씨는 “밥부터 먹고 하자”며 일어나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아일랜드식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도마를 꺼내고 칼을 잡았다. 야채를 칼로 자르고,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둘러 볶아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요리가 너무 좋아 한때 요리사가 될까도 생각했었다는 그의 손놀림은 소문대로 능숙했다.
1990년대말 아내와 사별한 이후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엔 매일 자신과 작업실 조수들을 위해 밥상을 차린다.

대화는 그가 직접 요리한 버섯야채볶음, 된장찌개, 지중해식 토마토 샐러드, 생선구이 그리고 차가운 독일산 리즐링 화이트 와인을 사이에 두고 이어졌다.

“그라나다 문화재 관리국의 요청을 받고 알함브라 궁전을 찍으러 도착하고 나서야 ‘이 사람들이 왜 내게 자기네 궁을 찍어달라고 했나’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관광객들은 이슬람 양식의 화려한 궁 건물과 기하학적인 설계의 내부 정원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바쁘잖습니까.
저도 오래전 알함브라에 갔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까 궁 뒤쪽으로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정원이 조성돼있더라고요.
그곳에서 가장 크고 높은 나무가 소나무이고, 숲의 중심 수종도 바로 소나무였습니다.
문화재 관리 책임자가 마드리드에서 열린 소나무 사진전을 보고 촬영을 부탁했는데, 동양인의 시각에서 과연 알함브라궁과 정원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던 모양이더군요.”

작업대 위에는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될 알함브라궁 사진의 복사본들이 흩어져 있었다.
안개에 싸인 소나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숲길, 현란한 무늬의 건물 창살 틈으로 새어드는 햇살 등 우리가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그 알함브라궁의 모습은 없었다.
2년동안 사계절을 찾아다니며 찍은 수천 컷 중 고르고 골라낸 것이 100여컷. 이중 전시회장에 걸리는 사진은 불과 44점뿐이다. 나머지는 곧 출간될 사진집에 함께 수록될 예정이다. 그는 알함브라궁 국립박물관 전시회를 마치는 대로 오는 9월30일부터 10월29일까지 서울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전관에서 대규모 개인전도 갖는다. 알함브라와 창덕궁 사진들을 이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창덕궁과 알함브라 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잖아요. 극동의 한국과 유럽 속 아랍의 정신(soul) 과 아름다움을 각각 대표하고 있는 곳이지요. 그 둘을 나란히 보여주면 서로 다르면서도 공통된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창덕궁을 새로 촬영하기도 했어요.”

배병우씨는 세계 예술시장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한국 국적의 사진작가다. 그 스스로 “이젠 국내 마켓과 별개로 해외 마켓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해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재고가 없다”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엘턴 존이 소장하고 있는 소나무 사진은 얼마전 미국뉴욕현대미술관(MOMA)측이 구매의사를 타진했다가 거절당했을 정도.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해 국제 예술시장에 소개했다고 할 수 있는 일본의 저명한 큐레이터들은 배병우씨를 ‘미스터 마쓰(소나무)’란 별명으로 부른다. 그
런가하면 지난 3월 스위스 취리히 전시회에서는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열렬 팬들이 너무 많아 스스로도 놀랐다고.

전쟁이 일어나던 해인 1950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바다, 소나무 등 줄곧 자연을 필름을 담아왔다.
그는 30대 독일 유학시절에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의 미학을 내 식대로 해석하자. 남을 흉내내고 유행을 따르지 말자는 생각과 다짐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카메라는 우리(한국)가 발명한 테크놀로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20대 때는 미국의 저명한 사진작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전통회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더군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을 숱하게 드나들었고 고려불화, 일본회화, 일본 우키요에 판화작품도 많이 공부했지요.
그러다보니 한국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소나무를 만나게 된 듯합니다.”

80년대 중반부터 소나무를 찍어오고 있는 그는 소나무에 대해 ‘한반도의 등뼈인 태백산맥의 피와 살’이라고 말한다.
배병우가 찍은 소나무 사진이 단순히 멋진 자연풍광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심상이며 한국의 혼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자신의 사진이 지금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데 대해 그는 “지구온난화 위기 시대를 맞아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진 점과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제 사진을 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들 했어요. 한물간 낭만주의란 지적도 많이 받았죠.
평생 자연과 한국적인 것을 변함없이 추구해왔는데, 이제야 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지난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대규모 사진전인 ‘포토 에스파냐’의 전체 주제가 바로 ‘자연’이었어요.
그만큼 자연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죠. 그런 추세에서 내 작품이 자연스럽게 세계인들과 공감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소나무는 배병우에겐 여전히 경외의 대상이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서울예술대의 유덕형 총장이 했다는 말을 전했다. “당신은 평생 소나무만 찍어라. 한가지 주제만으로도 우주와 소통할 수 있다.”

“하나를 깊게 파고들어가다 보면 뭔가가 보일 텐데 아직도 멀었나 봅니다. 유 총장의 말이 계속 소나무를 찍을 수 있게 하는 격려가 되더군요.”

사진과 요리 이외에 그가 사랑하는 것은 여행과 와인. 100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끊임없이 여행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했던 미국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삶이 그의 이상인 듯했다. 게다가 오키프처럼 30세정도 어린 애인과 삶을 나눈다면 금상첨화. 그대로 기사에 써도 좋겠느냐는 말에 그는 “물론”이라면서 웃었다.

 배병우 작가는…

▲1950년 전남 여수 출생
▲1974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1978년 홍익대 대학원 공예 도안과 졸업. 1981년~현재 서울예술대 사진과 교수
▲저작:마라도(안그라픽스), 사진디자인(안그라픽스), 소나무(안그라픽스), 배병우(시공사), 종묘(삼성문화재단), 청산에 살어리랏다(열화당)
▲전시회:제1회 개인전(관훈미술관, 1982), 마음의 영역-1990년대 한국현대미술(일본 미토아트타워, 1995), 배병우개인전(박영덕화랑, 2000), 배병우사진전(인사아트센터, 2005),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미술관 사진전(2006), 가나아트 뉴욕 개인전(2008), 스페인 마드리드 알함브라궁 내 국립박물관 개인전(2009.7.16~)
▲작품소장:현대미술관(한국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일본 도쿄) 휴스턴 현대미술관, 휴스턴 현대사진 미술관(미국 휴스턴), 시카고 21C 미술관(미국 시카고), Sol LeWitt’s Collections (미국), Elton John’s Collection (영국), Afinsa collection(독일), MANGO Collection(스페인), SISLEY Collection(프랑스)

 자료원 : 문화일보 오애리기자 aeri@munhwa.com   김연수기자 nyskim@munhwa.com 
 

 

소나무 찾아 25년 “살아 숨쉬는 숲이 내 작업실”

“으~ 추워!”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촌에 있는 사진작가 배병우(59)의 작업실 건물에 들어서면서 나는 “추워요~”하며 덜덜 떨었다. 안 그래도 영하 10도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날씨인데, 그는 난방도 하지 않은 실내에서 분홍색 스웨터에 분홍색 목도리를 꽁꽁 두른 차림으로 일하고 있었다.

1층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서니 방바닥이 언 땅 같다. 현관은 넓은 홀로 이어지고, 안쪽에 있는 사무실에서는 어시스턴트 2명이 전기난로를 켠 채 외국 전시관계자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고 있었다. 배병우는 아날로그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기 때문에 도록이나 포스터 제작에 사진 이미지가 필요하면 이 사무실에서 필름을 스캔해서 파일로 만든다. 2층의 서쪽은 스튜디오로, 동쪽은 암실로 쓰고 있다. 맨 위층인 3층으로 올라가니 어디서도 보지 못한 사진전문 도서관이 펼쳐진다. 세 개 벽면을 꽉 채운 책장에 미술 및 사진 관련 서적이 수백 권 꽂혀 있고, 옆에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시원처럼 협소한 침실이 있다. 그가 밤샘작업을 할 때 눈을 붙이는 곳이다.

사실 배병우에게는 난방이 필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는 늘 자연, 즉 야외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는 40년째 자연을 사진 찍고 있고 25년째 숲에서 소나무를 찍고 있다. 최근엔 초기 작업인 바다 사진에 다시 빠져 남해안을 떠돈다.

“추위에 떨어도 대자연 숲 속을 걷는 건 정말 좋아요. 40대 중반까지만 해도 영하 20도 실외에서 종일 사진을 찍어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자연을 찍으시니 여행은 많이 하셨겠어요. 그런데 필름 짊어지고 어떻게 여행을 하나요? 보통 한 번에 필름을 몇 통씩이나 들고 다니나요.

“작년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36일 동안 스페인 북부 800㎞를 걸었어요.(그는 커다란 지도를 펼치고, 프랑스 북부 생장에서 스페인 샌디에이고까지 이어지는 도보 순례코스를 보여줬다.) 그때 필름 450통 들고 가서 20~30통 남기고 다 찍었죠. 근데 그 필름 다 들고는 못 다녀요. 이젠 요령이 생겨서 제가 도착하는 지점의 우체국으로 미리 필름을 부치고 현지에서 찾아서 쓰죠. 거기서 다 찍은 필름은 중간중간 한국 스튜디오로 부치고요.”

800㎞면 서울~부산 왕복이네요. 사진 장비만 해도 무거웠을 텐데….

“어휴, 사진 장비가 30㎏이에요. 그런 거 짊어지고 매일 30㎞씩 걷는 건 완전 극기훈련이었죠.”

그런 경험 하고 나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해요.

“작품에 영향이라기보다는 제 몸에 영향을 끼쳤죠. 그때 몸무게가 10㎏이나 빠졌어요. 살 빠지면 머리도 작아지는 거 아세요? 모자가 커지더라고요. 물집 난 발에 새살 돋는 데 20일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결국은 몸의 변화라는 게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요즘 현대사진은 아이디어가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참 원시적으로 사시네요.

“네, 저 촌스러워요. 어떤 외국 전문가가 그랬어요. 당신 작품은 현대사진이 아니다, 동양화 같다. 그런데 바로 그거예요. 한국적인 느낌이 나니까 외국에서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작가 작품에서는 ‘I am Korean’이 나오면서 보편적인 미적 감수성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적이라, 그의 사진에서 수묵화 느낌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찍어 아무 가공 없이 내놓는데, 그의 풍경은 실경(實景) 산수(山水)가 아니라 뜻을 그린 사의적(寫意的) 동양화 같은 면이 있다. 동트기 직전 새벽안개가 자욱한 소나무 숲이나 어스름한 밤바다는 흑백 모노크롬(단색)으로 표현돼 더 관념적이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 제주도, 타히티 바다 등 왜 늘 자연만 찍나요.

“전남 여수에서 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자랐어요. 고향집 뒷산에 소나무가 있었는데,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은 풍경이 바로 소나무이고 바다인 거예요. 저한테는 자연이 모든 것의 원천이에요.”

지난 2~3년간 국내외 미술시장이 호황일 때 즐거웠던 대표적인 작가가 배병우다. 2005년에 가수 엘튼 존이 런던에서 그의 소나무 사진(130×260㎝)을 2700만원에 산 게 크게 뉴스가 됐고, 2007년엔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소나무 사진(120×120㎝) 두 점 시리즈가 13만8000달러(약 1억3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그와 관련한 시장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죄송하게도 선생님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은 꼭 ‘돈’ 얘기를 합니다.

“국내외 경매에서 비싸게 팔린 게 자주 뉴스가 돼서 그런데, 전 IMF를 겪었기 때문에 지난 호황기 때 사실 즐거움보다는 걱정이 컸어요.”

지금 국내외 미술시장이 다 나빠졌는데 어떤지요.

“경제가 안 좋으니까 저 역시 별로 안 좋은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에 영향 받을 나이는 아니잖아요. 이제 막 시작한 젊은 작가라면 값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게 커리어에 매우 안 좋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사진만 40년 찍었고, 이젠 안정된 위치에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시장 변동에 별로 흔들리지 않아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세인에게 잘 알려진 작가인 게 좋은 점이 많은가요.

“사진 장르를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올렸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껴요.
얼마 전엔 금오도(여수 앞바다에 있는 섬)에 사진 찍으러 가서 민박을 했는데, 제가 사진 들어간 달력을 선물로 주니까 민박집 딸이 네이버에서 제 이름을 쳐보더니 놀라서 찾아와서는 자기 집에 소나무 사진이 하나 있는데 좀 봐달라고 하는 거예요.
스페인 도보여행 할 때는 동행한 한국 지인들이 외국인들한테 ‘이 사람 세계적 사진가다’라고 하니까 그 외국인들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려고 식당에 들러서 구글에서 내 이름(Bae Bien-U)을 검색해 보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어느 기업 회장께서 저한테 그러셨어요. ‘당신은 박세리 같은 사람이다.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로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그런 말 들을 때 보람을 느껴요.”

배 선생은 현장을 중시하는 작가시죠.

“아무래도 여행을 다니며 자연을 찍고, 또 세계 곳곳에 남의 전시도 많이 보러 다니니까요. 학생들한테도 현장얘기를 많이 해줘요. 여기 서재에 있는 도록을 다 스캔해서 컴퓨터에 넣어놓고, 학생들이 다른 작가와 비슷한 작품을 하고 있으면 찾아서 꺼내 보여줘요. 네가 이 걸 극복해야 하고 아류가 되지 않아야 한다, 라고. 사진만이 아니라 그림도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거라면 아트페어와 경매 도록도 가리지 않아요.”

왜 사진을 시작했나요.

“원래는 그림을 그렸죠. 고등학교 때 미술반이었는데, 카메라를 좋아해서 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찍었어요.
대학(홍익대 응용미술학과) 때 사진 하는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같이 다니며 찍다가 이렇게 됐죠.”

그땐 사진이 인기장르가 아니었을 텐데, 요즘 사진은 미술의 중심 장르가 되었죠.

“추사 김정희 글씨가 아무리 좋아도 외국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사진은 전세계 누구나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한, 뛰어난 비주얼 랭귀지(visual language)예요.
제가 외국어는 잘 못하지만 외국에서 누구를 만나도 제 사진 보여주면 금방 소통이 되고 멋진 사진을 찍어 주면 금방 친해져요. 전 사진의 그 점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 덕분에 아마추어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어서 사진가에게는 엄청 위기 아닌가요.

“네, 사진가가 도전 받고 있는 거 맞아요. 그런데요, 잘 보시면 진짜 스트레이트로 사진 잘 찍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어요. 못 찍은 사진 손 암만 봐도 좋아지는 줄 아세요? 그리고 포토샵으로 만진 사진은 생명력이 없어요. 전 아주 약간 톤 정리하고 먼지 털어내는 것 외에는 트리밍도 안 해요.”

그는 책꽂이에서 독일의 세계적 사진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집을 빼어 펼치더니
“이 사람이 아이디어만 좋은 줄 아세요? 사진도 진짜 잘 찍거든요. 일단 완벽한 사진을 찍은 다음에 아이디어도 있는 거지요” 했다.

하지만 디지털이 아닌 필름을 쓰는 건 아마 배씨가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아직 못 찍어본 자연이 있나요.

“북한의 황량한 풍경을 찍고 싶어요. 아름다운 금강산 말고 황량한 풍경.
당장 올해는 봄이 오면 스페인을 다시 걷고 싶어요. 800㎞ 다시 다 걸을 자신은 없고, 특히 좋았던 곳만 골라 20~30㎞씩 열흘, 딱 200~300㎞만 걷고 싶어요.”

 

아래 사진  1. 알함브라 궁전 시리즈(2007) 2. 알함브라 궁전 시리즈(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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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의 소나무시리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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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한국 사진가이면서, 국내에서 사진을 인기장르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1950년 전남 여수생으로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부터 서울예술대(전 서울예술전문대) 사진과 교수로 있다. 2006년 스페인 티센미술관 개인전, 2008년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 페스티벌’전 등 활발한 활동. 작년 말엔 세계적 미술전문 출판사인 하체 칸츠(Hatje Cantz)를 통해 작품집을 냈다. 세계문화유산인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 측의 의뢰로 지난 2년 동안 알함브라궁전과 주변을 찍었고, 올해 초 알함브라궁전 안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전시할 계획이다.

2009.2.9 이규현 미술저널리스트 artkyu.tistory.com

출처 : 주간조선

 

앨튼 존에게 ‘소나무’를 팔다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배병우가 스페인 문화재국의 의뢰로 철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일하는 사연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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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 연작. 배병우는 조선 산수화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배병우(58)는 세계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주제는 소나무, 바위, 오름, 바다지만, ‘소나무 사진가’로 가장 이름이 높다.
가수 엘튼 존이 그의 작품을 사면서 화제에 올랐고, 지금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미술품 경매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

배병우-바위.jpg    
 
» 바위 연작.  


소나무 척 보면 출신지역을 알아

그가 찍은 소나무는 수묵화 같다.
소나무 핀 솔숲은 안개에 머문다.
그리고 햇빛은 안개를 찌르고 들어오고, 배경은 뿌옇게 사라진다. 곧이어 프레임은 흑백의 세계로 전화된다.
이제 안개와 빛은 화선지가 됐고, 소나무는 주인공이 됐다.
배병우의 사진을 보는 사람은 소나무의 곡선과 질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 만난 배병우는 갑자기 겸재 정선의 화첩을 꺼냈다. “겸재의 진경산수화를 보세요. 100그루 가운데 99그루가 소나무에요.”

예부터 한국에서 소나무는 관솔불로 어둠을 밝힌 서민 생활의 도구이자, 절개를 중시하는 사대부의 예술적 소재였다. 심지어 조정은 소나무에 벼슬을 내리기도 하지 않았나. 배병우 또한 소나무를 한국적 특성을 잘 살리는 오브제로 생각한다. 그가 얻은 세계적 명성도 이에 힘입은 바 크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군집한 소나무는 프레임의 상하를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대나무의 수직 프레임과도 같지만, 아래위를 구불구불 잇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건 흡사 몰려든 군중 같다. 비틀거리는 사람, 비틀거리는 사람을 부축하는 사람, 싸우러 가는 사람, 늙은 어미를 돌보는 사람. 그러함에도 소나무의 곡선은 한없이 강인해 보인다. 아마도 곡선이 직선보다 강하다면 불규칙한 소나무의 곡선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소나무는 그 나라, 그 지역 사람을 닮았죠.”

배병우는 이렇게 말을 받았다. 한국 사람과 유럽 사람이 다르듯 한국 소나무와 유럽 소나무가 다르다. 뭍사람과 바닷사람이 다르듯 금강송과 해송이 다르다. 바닷가 소나무는 까맣고 거칠고 뒤틀렸다. 내륙의 소나무는 곧고 밝다. 같은 내륙의 소나무라도 해의 위치·토양·지형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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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연작. 그의 고향 여수 바닷가에서부터 그는 바다와 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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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연작. 그의 고향 여수 바닷가에서부터 그는 바다와 친근했다.
 
 

배병우-오름.jpg   

» 오름 연작.
 

그는 1980년대부터 전국의 솔숲을 샅샅이 뒤졌고, 84년부터 소나무를 작업 소재로 선택했다.
그래서 그는 안면도 송림과 울진 소강리, 경주 남산의 소나무 한 그루만 봐도 한눈에 출신지를 구분할 수 있다.
가로세로 비율인 1대2인 린호프 카메라를 들고 그가 최종적으로 매달린 건 경주 남산의 소나무다.
그는 “남산의 소나무는 왕의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도록 도와주고, 더 이상 왕이 세상 일에 관심 갖지 않도록 막아준다”고 말한다.

배병우는 스페인 문화재국의 의뢰로 계절마다 한 번씩 2주 가량 안달루시아 알람브라 궁전에서 머물며 작업한다. 내년 봄 쯤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스페인이 낯선 동양 사진가에게 알람브라를 내준 이유는 정원 한가운데 소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그가 속삭였다. “알람브라 뒤편 언덕길을 따라가면 아름다운 솔숲이 나와요”


조선 산수화에서 세계적 보편성 획득


그가 찍은 모노톤의 소나무들을 바라봤다.
알람브라의 소나무는 직선으로 뻗었다.  유럽의 귀족이 나오는 흑백영화에 나오는 숲속 같았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를 둘러싼 안개를 보며 신라의 왕이 생각났다면, 알람브라의 소나무들은 서양의 영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달랐지만 같았다.

배병우는 “알람브라 작업이 끝나면 2년째 작업하는 창덕궁 소나무와 함께 ‘궁전의 소나무’를 주제로 기획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평론가 김승곤은 배병우의 사진은 “조선 산수화를 재현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히려 배병우는 조선 산수화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적 산수화에서 착상한 배병우의 사진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긴 어렵진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보편의 경지에 올랐는지 모른다. 크리스티, 소더비에서 이미 고가에 팔리지 않는가.

자료원 : 한겨레신문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조선 인터뷰]엘튼 존이 작품 사간 사진가 배병우


“왜 소나무만 찍냐구요? 한국의 美는 거기 있거든요”

박종인기자 seno@chosun.com    입력 : 2005.11.04 18:24 / 수정 : 2005.11.05 05:21

 배병우의 스튜디오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에 있다.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잿빛 콘크리트 건물 두개를 2층에서 이어 붙였는데, 큰 건물은 스튜디오와 암실, 작은 건물은 침실과 서재·부엌이었다. 막 지은 건물이 아니다.

“한국에서 사진으로 먹고 살기 쉬운 일이 아닌데, 어찌 이리 좋은 스튜디오를 만들 수 있었나” 하자 껄껄 웃는다.
“이런 스튜디오, 본창이랑 나랑 해서 몇 명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스튜디오 제대로 만들어 놓아야 후배들이 사진예술을 꿈꾸지 않겠는가.”

구본창과 배병우, 세계적으로 활동 중인 이들은 사진예술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동경과 흠모의 대상이다.


―엘튼 존이 사간 작품은 어떤 건가?

“이번 작품집을 위해 작업 중이던 작품이다.
올 초에 작품집 스폰서기업인 ㈜태평양의 서경배 사장이 스튜디오에 들렀다. 소나무 몇 점을 프린트해달라기에 해줬더니 그게 가나화랑으로 연결되고 그게 포토 런던이라는 사진시장에 출품된 거다.”

그가 사진집 23페이지를 열어보였다. 두 면 가득 들어오는 웅장한 송림(松林). 둔중한 소나무 두 그루가 안개 스민 숲 속에 튀어나와 있다. 경주 남산이다. 지난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소나무 시리즈가 1만3400달러(약 1400만원)에 낙찰됐으니, 올 들어 해외시장에서 배병우 작품 가격은 폭등을 거듭하고 있다.


―왜 소나무인가?


“처음에는 바다 사진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인의 정체성이 궁금해졌다. 내가 뭐지? 우리가 뭐지? 하다가 자연스럽게 소나무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게 굳어서 20년이다.”


―한국미(韓國美)라…. 현대적이지 않다.


“맞다. 사람들이 나더러 ‘당신은 현대작가가 아니다’라고들 한다. 어찌보면 나는 모더니스트다.
그러니까 촌티나게 한국미에 집착하지.”

그의 여수 고향집 뒤에 소나무가 있었다고 했다. 낙락장송이었는데 그걸 보고 자랐다. 산에 오르면 저 앞에 바다가 보였다고 했다. 또 어린 배병우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에게 “네가 그려준 어린이회장 포스터 때문에 내가 회장했다”고 했을 정도다. 고향집의 서정과 그림 재주가 배병우를 이 시대에 가장 서정적인 사진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한때 체육학과를 갈까 했을 정도로 유도를 한 이력도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몸으로 먹고사는’ 그 어떤 직업인으로 볼 정도다.

배병우-소나무01.jpg
 한국적 서정이 물씬한 배병우의 ‘소나무’ 시리즈 중 하나(130×260㎝). 이 작품은 세계적 수집가인 영국 가수 엘튼 존이 약 280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지금은 7000만원이 넘는다. 작가 제공

 

―한국미가 뭔가?

유도로 다져진 팔뚝을 그가 내민다. “이 곡선과 닮은 능선, 그러니까 노년기에 접어든 우리 산하(山河)의 완만한 곡선이 한국미다. 이맘때부터 내년 봄까지, 이 잔털처럼 서 있을 소나무들과 능선이 한국미다.” 그에게 소나무가 아버지라면 바다는 어머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제주도 오름과 바다, 숨어 있는 계곡을 촬영 중이다. 갑자기 사진가가 벌떡 일어나더니 겸재 정선의 작품 도록을 가져왔다. “이걸 보라. 겸재의 소나무 그린 기법. 원경일 때, 근경일 때 소나무의 디테일한 표현이 다르다. 근사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바로 겸재다.


―겸재 그림에는 대체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당신 사진에는 사람이 없다.


“딱히 이유는 없다. 20년 동안 소나무만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포함시키는 게 어려워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내가 소나무 숲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초대형 프린트가 됐건, 사진집에 있는 작은 사진이 됐건 말이다. 배병우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나?


“사진은 현대의 붓이다. 문제는 그 붓으로 뭘 그릴 것이냐다. 카메라 기술만 좋다고 다 사진가가 아니다.” 사진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손 동작도 거칠어진다. “나는 예술가지 사진가가 아니다.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예술적인 기초를 가지고 사진을 해야 한다”고 했다.


풍경사진의 대가였던 안셀 아담스는 작곡가였다. 영화적인 설정 속에 자화상을 찍는 미국 여성작가 신디 셔먼, 그는 남편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녹색칠을 한 석고 고양이 떼를 찍어 ‘방사선 고양이’ 시리즈를 내놓은 샌디 스코글런디는 조각가였다. 애잔하고 충격적인 브라질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도, 그는 경제학박사로 제삼세계를 연구하다가 아예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분노와 비애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 기초가 없이 남의 것이나 흉내내면 경쟁력이 없다. 한국 사진학과는 사진 기술자를 만들기는 좋지만, 예술적 소양을 일러주지는 못한다. 그게 아쉽다.” 21세기, 세계 미술시장의 30%는 사진이다. 안드레아스 구어스키 같은 작가의 사진은 100만달러가 훌쩍 넘는다.


―디지털시대다.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필름을 쓴다.


“아날로그가 갖는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디지털의 미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필름시대 사진은 인화지에 코팅한 은(銀) 입자가 이미지를 만들었다. 디지털은 모니터에 부유(浮遊)하는 이미지를 종이에 잡아야 한다. 은입자에 능숙한 나처럼, 떠다니는 이미지를 포착하는 새로운 대가가 나와야 한다.” 유수의 세계 미술관들은 잉크젯프린터로 인쇄한 작품들을 구매하고 있다. 코닥·아그파·일포드 등 많은 필름·인화지 제조업체들이 생산라인을 닫고 있다. 필름이 사라지는 날, 이 대가는 어찌해야 할까, 감히 묻지 못했다.


―어떻게 사진을 하게 됐나?


“동네 형님이 서울대 미대를 나왔는데, 대학교 1학년(그는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나왔다) 때 그 형이 사진을 권했다. 그때부터 전공인 디자인은 뒷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디자인 배우고 나처럼 디자인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다가 4학년 때 집안이 망했다. 젊은 배병우의 지난한 삶이 시작됐다. 표정이 씁쓸해졌다. “워낙에 사진이 배고픈 일이지만, 남의 그림, 남의 조각 작품, 남의 집 사진 찍어주고 닥치는 대로 벌어서 사진했다.” 그러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와 25세에 서울예대 사진과 창설 멤버가 됐다. 강단 30년. 그동안 기업 사진들 찍으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는 새 김중만·김아타·이불 등등 다양한 예술인과 친구가 되었다.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던 그의 말, 어디 사진뿐이겠는가. “우리 할 일 다 했으니, 이제 새로운 스타들이 나올 차례입니다.” 그가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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