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성공 비즈니스, 자영업자에 새로운 희망
“위기(危機)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로 구성된 것이다”(존 F 케네디).
위기가 심화될수록 기회도 많아진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외환 위기도 슬기롭게 견뎌온 우리 사회지만 이번 경제 위기는 그때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는 정부와 경제연구소의 엄포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해 촉발된 세계경제 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각국의 실물경기 위축으로 번지면서 우리나라도 지난 IMF 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최악의 경기 침체 상황을 맞고 있다.
주식, 펀드, 부동산은 반토막이 난 지 오래고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 종사자를 가리키는 비임금근로자 수는 지난해 12월 705만6000명으로 전달(744만 명)에 비해 38만4000명(5.1%)이나 줄었고 최근 2개월 사이 또다시 자영업자 42만 명이 폐업하는 등 자영업자들이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 같은 감소 폭은 2년 만에 최대치다.
홈쇼핑업체들 하루 매출 100억 ‘대박’
하지만 이같이 폐업이 속출하는 자영업계에도 블루오션이 있다. 시중에는 불황에서 살아남는 법, 불화에 강한 업종, 창업정보 등이 연일 화제다. 그야말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 정면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참호 속에 꼭꼭 숨어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 하는가? 선택은 개개인의 몫이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격언이 요즘처럼 필요한 시기도 없을 듯싶다.
불황기에는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져 소비 패턴이 달라진다. 따라서 이러한 소비 패턴에 부응하는 업종 선택과 마케팅 전략이 필수다. 이른바 ‘불경기에 강한 업종’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에 더해 적절한 마케팅 전략도 중요하다. LG경제연구원의 최경운 연구원은 “소비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지갑을 닫고 있고, 기업들은 꽁꽁 언 소비 심리를 녹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많은 기업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불황기에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간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례로 최근 홈쇼핑업체들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하루 매출 100억 원이 넘는 ‘대박’을 잇따라 터뜨리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GS홈쇼핑은 지난달 22일과 이달 1일 각각 128억 원, 11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CJ홈쇼핑도 3월 1일 하루 동안 특집방송 ‘힘내라 대한민국! 디지털 팍팍쇼’를 통해 총 12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 홈쇼핑업계의 관계자는 “이 같은 수치는 평소 주말 하루 매출이 50억~60억 원 수준으로, 하루 매출 100억 원 달성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대기록”이라며 “이 같은 ‘불황 속 대박’의 열쇠는 바로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감성마케팅’ 전략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즉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각종 사은품 및 선물세트 증정, 무이자 할부 혜택, 고가의 깜짝 이벤트 등을 실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1월에 발표한 ‘불황형 비즈니스 전략’은 ‘불황에 뜰 업종’을 6가지로 분류해 ‘6R 비즈니스’로 명명, 최근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수선(Reform)업이 인기다. 재봉틀, 구두수선상품, 구두굽 리폼업 등이 뜨고 있는 것. 화장품, 각종 세제, 프린트 카트리지 등의 리필 제품(음식점, 주점에서도 밥이나 맥주, 음료수 등의 리필 포함)을 다루는 재충전(Refill)업도 요즘 추세다. 중고물품교환서비스, 특히 인터넷을 통한 관심 물품의 중고 교환 비즈니스의 증가는 재활용(Recycling)업이다.
중고 할인매장·전당포·수선업 호황
이밖에 주머니 형편이 어려워진 소비자들을 위한 각종 경품, 쿠폰, 마일리지 등 ‘보상 비즈니스’가 늘어남에 따른 보상(Reward)업, 불경기로 심리적 허탈감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증가하는 복권, 경마 등 사행산업을 의미하는 오락·도박(Roulette)업, 기업들이 매출 감소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험관리에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음에 따라 경영 컨설팅 수요 증가 및 개인을 상대로 한 창업 컨설팅, 은퇴자의 자산 관리에 대한 자문 서비스를 의미하는 위험관리(Risk)업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번 불경기의 ‘원산지’인 미국에서도 불황을 극복하려는 개인과 기업들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미국에서는 최근 중고 할인매장이나 전당포, 수선집, 자동차 수리점 등이 호황을 누리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대출 관련 서비스업도 성업 중이다. 소비자들의 채무와 파산이 늘어나면서 신용 자문과 대출, 예산관리, 부채 정리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또 최근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빚을 받아주는 채권추심업체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밖에 사회가 불안해지고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금고업과 사립탐정업도 인기다. 은행조차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자신의 집 금고에 자금을 보관하려는 투자자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경기가 침체하면 범죄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사립탐정의 수요도 그에 따라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요구를 사전에 잘 파악해 대응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는 기업도 있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회사인 맥도날드와 세계적 온라인 판매업체 아마존닷컴이 대표적이다. 맥도날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일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맥도날드는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한 55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도 11% 늘어난 15억 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값비싼 레스토랑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의 심리를 간파해 실속 세트 등 마케팅에 성공한 사례다.
온라인 소매업체인 아마존닷컴 역시 경기 불황 여파에 신음하는 다른 소매 업체들과는 달리 작년 12월 호황을 누리면서 4분기 순익이 9% 증가, 2억2500만 달러에 달했고 수입은 예상을 뛰어넘어 18% 늘어난 67억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 최근 호는 최근 불황에도 잘 나가는 업종 7개를 선정해 ‘7개의 승자 산업(7 winning industries)’이라 이름붙였다. 바로 비디오게임과 화장품, 쓰레기처리업, 인스턴트 식품, 할인점, 직업교육전문대학, 패스트푸드 7개 업종이 주인공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값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비디오게임 업체들과 직업교육전문대학은 기업의 감원에 따른 특수를 누리는 경우다.
지난 연말연초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고, 닌텐도의 게임기 ‘위(Wii)’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포춘>은 “비디오게임 업체들은 감원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어나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집 안에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면서 매출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쓰레기처리업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불황에도 쓰레기는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불황일수록 빨간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립스틱 효과’도 입증됐다. 경기 침체 시 소비자들은 고가 제품 대신 저렴하면서도 기분 전환을 해주는 제품을 쓰기 때문. 백화점 매출은 줄어도 저가 화장품 매출은 두 자릿수 성장했다. 값싼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인스턴트 식품 제조업체, 패스트푸드점, 할인점들도 호황이다.
맥도날드·아마존닷컴 수익 늘어
우리나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불황을 오히려 사업 기회로 삼는 업종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기존의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폐업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심리를 잘 간파한 업종 선택과 틈새마케팅은 위기의 자영업자에게 새로운 기회와 성공창업을 보장한다.
한국전화번호부는 최근 전화번호 통계자료와 전국 27개 지점에서 근무하는 자사광고영업사원 300명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불황에 뜨는 이색자영업 10가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폐업 대행 전문점의 경우 경기 불황으로 가게문을 닫거나 업종 전환하는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업체는 폐업한 곳의 자재들을 창업자에게 되팔아 돈을 버는 사업이다. 신용조사업도 성행하고 있다. 예전 흥신소가 진화한 것으로 의뢰자로부터 특정인의 산거래, 재정 상황, 신용에 관한 사항을 부탁받아 조사해 알려준다. 전국에 1만5000개의 점포가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어 있다.
간판전문점도 괜찮은 업종으로 꼽혔다. 불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최소비용으로 기존 점포의 간판이나 인테리어를 바꿔 다는 리모델링 창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 파괴 세탁소도 와이셔츠 한 장 세탁비가 900원에 불과한 싼 가격 덕분에 업체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폐기물처리업도 불황에 상관없이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업종이다. 불황이라고 해서 쓰레기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2만200여 개의 폐기물 수집업체, 건축폐기물처리업체, 오·폐수처리업체, 하수처리업체, 폐차대행업체 등은 불황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는 평가다. 네일숍 및 저가 마사지숍도 인기 업종이다. 한국전화번호부에 등록된 네일 관련 업체 수만 해도 어림잡아 900여 개나 된다.
이밖에 무한리필음식점, 디저트전문점, 대여전문점, 초저가생활용품할인점 등이 불황형자영업으로 꼽혔다. 한 창업컨설팅 전문가는 “우리 국민의 DNA에는 이미 IMF라는 위기를 극복한 학습효과가 심어져 있다”라며 “위기가 기회라는 역발상을 통해 틈새시장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경기 불황 속에 차량을 정비업체 등에 맡기지 않고 직접 정비하는 ‘셀프 정비족’이 증가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온라인 자동차용품 쇼핑몰 ‘이지모빌(Easymobil)’에서 직원이 분주하게 주문 제품을 포장하고 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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