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경기침체 속에 소비양극화 커져… “불황기엔 저가·고가 소비 공존”

Updated on 2009-06-03 by

[커버스토리]골목상권은 비명, 명품매출은 여전

 경기침체 속에 소비양극화 커져… “불황기엔 저가·고가 소비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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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침체가 지속하자 소비와 판매에도 극심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긍정적인 경제지표에도 불구하고 서민경제엔 그림자가 짙다. 손님이 뜸한 재래시장(위)과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여주프리미엄아울렛 전경.<경향신문사 / 여주프리미엄아울렛 제공> 

골목이 조용했다. 서울 독산동 164번지 주택가로 들어서는 골목 초입. 비록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 시간대라고는 하지만 슈퍼와 미용실, 부동산, 식당, 세탁소 등이 늘어선 골목은 썰렁하다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골목 상권이 죽은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지난해 겨울 이후 가게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장사가 안 된다. 하나둘 문닫는 가게들을 보면 그나마 임대료 안 밀리고 돈 백이라도 집에 가져가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골목 초입에서 문구류를 갖춘 조그만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씨는 긴 한숨을 내쉰 후 넋두리처럼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현재 슈퍼마켓의 건너편 건물에서 문구점을 운영했다. 건물 주인이 “공실률이 큰 상가 대신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원룸으로 만들겠다”고 해 이사할 곳을 찾던 차에 마침 지금 자리에 있던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옮겨왔다. “문구점과 슈퍼를 함께 운영하면 서로 보완되고, 수익도 나을 것 같았다”는 김씨. 그러나 경기 침체 탓으로 별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식품 늘고, 문화 줄고’ 불황식 습관
이웃한 미용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6년째 같은 자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씨는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이 골목에 미용실이 3곳이나 있었다”며 “그 사이 2곳이 없어져 상대적으로 손님이 몰리면서 재미도 봤는데,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10만 원짜리(박씨는 스트레이트 파마를 이렇게 불렀다) 손님을 받아본 게 한참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손님이 뜸하기는 식당과 세탁소도 예외가 아니다. 대로변에서 돼지고기 전문식당을 하고 있는 최씨는 “금겹살이니 뭐니 하는 바람에 손님이 확 줄었다”고 했고, 세탁소 김씨는 “겨울이 지났는데도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는 사람이 적다”며 듬성듬성 빈 세탁소 천장 옷걸이를 가리켰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지표는 나아지고 있다지만 서민이 주고객인 골목상권엔 ‘남의 일’ ‘강 건너 일’인 셈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대형 할인마트에 이어 대로변에 대형 슈퍼마켓까지 생기면서 그곳에 손님을 뺏긴 이유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잘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긴 경기 침체는 소비 패턴에 변화를 가져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 932 개 소매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판매 동향 조사 결과, 지난 1년간 옷 판매는 크게 줄어든 반면에 화장품은 오히려 늘었다. 세부 품목별로는 가전(50.4%)이 가장 많이 줄었고, 의류(42.6%), 잡화(18.0%), 가구(16.7%)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매출이 증가한 품목은 신선식품(26.4%)과 가공식품(18.9%), 화장품(9.5%), 건강식품(3.6%) 등이었다.

상의 관계자는 “실물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졌음에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식품류 판매가 늘어났다”며 “과거 외환 위기 시절에도 증가세를 보였던 화장품 매출 증가는 옷 대신 필수품 성격이 강한 화장품으로 돋보이려는 이른바 ‘립스틱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시의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서울시내 2만 가구(15세 이상 4만8669명) 및 거주 외국인 1000명, 서울 소재 5500개 사업체(외국법인 500개 포함)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8 서울서베이 사회상 조사’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들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에 따라 가계 지출 항목 중 ‘의류 및 신발비’(53.3%)를 가장 먼저 줄여나갔다. 이어 ‘오락·문화비’(50.0%), ‘비주류 음식료품비’(49.8%) 순으로 지출을 줄였다. 특히 문화활동이 크게 위축돼 미술전시회와 공연예술관람, 콘서트, 영화관람 지출 비용도 전년도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

반면 가계부채는 늘어나 서울의 2가구 중 1가구(49.7%)는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채의 주된 원인은 주택구입 및 임차(72.7%), 재테크(8.3%), 교육비(7.9%), 생활비(6.8%) 순이다. 경제 여건이 열악해지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도 소홀해져 시민들의 노후준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2.8% 하락한 56.7%로 조사됐다. 이는 2003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세탁소 김씨는 “최근엔 옷을 고쳐 입으려고 수선을 맡기는 사람이 늘었다”며 “경기 불황으로 힘든 때 씀씀이를 줄이자는 생각에 예전 옷들을 찾아들고 가게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아껴 쓰고 고쳐 쓰는 ‘리폼(Reform)형 소비 패턴’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 불황으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서민들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체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오렌지 대신 귤, 삼겹살 대신 목심, 고등어 대신 꽁치를 찾는 식이다. 먹을거리만큼은 씀씀이를 줄이기 힘든 탓에 결국 소비자들은 ‘꿩 대신 닭’ 식으로 대체 소비에 나서고 있다.

‘꿩 대신 닭’ 서민층의 대체 소비 늘어


최근 현대백화점은 불황기 소비 유형을 ‘오렌지(O·r·a·n·g·e)’로 정의해 눈길을 끌었다. 집에서 식사하거나 패션에서 실용성이 강조되는 등 불황기 소비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분석에 따르면 ▲외식 대신 집에서 요리(Oven family) ▲해외여행 대신 가까운 근교 나들이(Rest in nest)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패션(All-round wear) ▲정보 교류를 위한 네트워크(Network) 중시 ▲가족 제일주의(Good father) ▲친환경 제품 선호(Eco-friendly) 등이 최근의 소비 트렌드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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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집에서 요리해 식사하는 사람이 늘면서 올 들어 조리기구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당일버스 여행’이나 ‘근교 나들이’ 강좌가 인기를 끌었고, 외출복과 운동복으로 두루 입을 수 있는 아웃도어 의류 매출도 14.9%나 상승했다.

상품 구입 형태도 달라졌다. 쇠고기에 비해 저렴한 돼지고기 삼겹살의 수요가 급증해 올 들어 가격이 치솟으면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의 육류 소비 패턴도 바뀌고 있다. 목심, 앞다리 살, 뒷다리 살 등 더 싼 부위가 삼겹살의 대체재로 뜬 것이다. 4월 삼겹살 평균 가격은 100g당 2000원대로 지난해 평균 가격보다 20% 이상 올랐다. 반면 등심과 앞뒤 다리살은 1000원대 수준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돼지고기도 싼 부위를 찾는 ‘불황형 소비 패턴’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기 불황은 50원의 가격 차에도 소비자를 ‘벌벌’ 떨게 했다. 편의점 업체 세븐일레븐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같은 상품이라면 좀 더 값싼 것을 구입하려는 소비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농심 신라면(750원)의 매출이 전년 대비 33% 신장한 반면 50원 저렴한 안성탕면(700원)의 경우 전년 대비 62.3% 신장해 2배 가까이 신장률을 보인 것. 또 생수 판매 1위 브랜드인 농심 제주삼다수 500㎖(750원)가 30.9% 상승한 반면 세븐일레븐에 자체 브랜드인 500원짜리 먹는 샘물 500㎖(500원)는 133.8%나 상승해 큰 차이를 보였다. 100원짜리 요구르트는 35.9% 상승했으나 그보다 5배 비싼 500원짜리 이오(요구르트)의 매출은 오히려 7.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븐일레븐 마케팅팀 허승완 팀장은 “불황이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이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비·구매 패턴이 변하고 있다”며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 형태가 강화되면서 브랜드 중시에서 벗어나 가격 중심의 실속형 소비 경향 역시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명품 매출 증가, 양극화 골 깊다
하지만 동네를 벗어나 도심에 이르면 또 다른 소비 패턴이 존재한다. 백화점과 명품 매장 매출은 오히려 늘어나면서 “불황기에는 저가 상품과 고가의 명품 소비가 공존한다”는 유통업계의 속설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 백화점들은 불황에도 ‘나홀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백화점 3사의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8.9% 증가했다. 특히 롯데는 올 들어 불황이 심화했음에도 매출 증가율이 지난해 4분기(6.1%)보다 2.7%포인트 높아졌고 현대와 신세계도 1~2%포인트 올랐다.

백화점들은 올 들어 당초 목표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근본 이유로 주소비층인 중산층과 고소득층이 불황에 따른 실질적인 타격을 덜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측은 “연봉 5000만 원 이상 직장인이나 전문직, 고소득 자영업자 등 백화점을 주로 이용하는 계층은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 이후에도 소득이 크게 줄지 않아 소비 심리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실질소득이 높은 수도권 점포의 매출이 지방 점포보다 월등히 높은 데서도 고소득층의 소비 심리가 살아 있음이 나타난다.

백화점 전체 매출을 견인한 품목은 고가 명품과 화장품이다. 지식경제부가 주요 유통업체의 3월 매출을 집계한 결과 백화점 명품 판매는 지난해 3월보다 23.6%나 늘었다. 고환율로 면세점과 가격 차이가 없자 차라리 품목이 다양한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 해외명품 담당자는 “과거 면세점 인기 품목이던 화장품·패션 소품 등의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볼 때 여성들이 예전보다 백화점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신세계첼시가 운영하는 여주프리미엄아울렛에도 명품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채은 여주프리미엄아울렛 홍보팀 과장은 “구체적인 매출을 밝힐 수는 없으나 4월의 경우 지난해 대비 입차대수 20% 증가, 입차당 단가 12% 신장, 관광객 45% 증가를 보이고 있다”며 “달러와 엔화 강세가 한몫을 했고, 해외여행이 줄어 면세점 이용보다 우리 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파란불’을 보이고 있지만 골목 안에서 만난 서민들의 체감지수엔 여전히 ‘빨간불’이 깜빡이고 있다. 소득에 따른 소비, 규모에 따른 판매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자료원 :  위클리경향 825호 2009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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